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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베리테

질문하는 예술가, 시민 ; 감독 정윤석

28 Mar 2017 / DOCKING vol.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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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석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가 2017년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밝은 미래’ 부문에 초청되어 월드 프리미어를 가졌다.  <논픽션 다이어리>(2014)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돌입한 한국 사회의 징후를 1994년 지존파 살인사건에서 읽어냈던 정윤석 감독은,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에서 역시 1994년에 터져나온 ‘서울 불바다’ 발언을 디딤돌 삼은 펑크 밴드 ‘밤섬해적단’의 음악과 권용만, 장성건, 박정근 등 멤버들의 삶을 통해 레드 콤플렉스, 국가 폭력, 비정규직 문제 등이 뒤엉킨 한국 사회의 복잡한 현재를 청년 세대의 시선으로 파헤친다. 첫 장편영화로서는 <논픽션 다이어리>를 먼저 선보였지만,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논픽션 다이어리>와 함께 진행되었던 프로젝트이며, 2012년 전주국제영화제 피칭에서 첫선을 보인 뒤 길고 끈질긴 여정을 완주해 지난해 인천다큐멘터리포트 베스트 러프컷 상을 수상했다. 로테르담 영화제 직후 한 달 동안 긴 여행을 다녀온 정윤석 감독에게 작가로서의 고민과 지금 한국 다큐
멘터리 현장에 대한 고민을 물었다.  (인터뷰 및 정리 | 한선희)

 

정 윤 석 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동 대학원에서 다큐멘터리를 전공, 미술가 및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인 정윤석은 다큐멘터리와 미술이라는 형식을 통해 국가와 사회의 ‘공공성’을 꾸준히 질문해왔다.
 2010년 밴쿠버국제영화제, 2012년 광주비엔날레 등 국내외 영화제 및 전시를 통해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90년대 희대의 살인집단이었던 지존파 사건을 다룬 첫 장편 다큐멘터리인 <논픽션 다이어리>로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비프메세나상), 2014년 제6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넷팩상과 2014년 제47회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오피셜 놉스비젼-논픽션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최근 완성한 다큐멘터리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제46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브라이트 퓨처' 부문에 공식초청되었다.

한선희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의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첫 상영은 어땠나.
정윤석
로테르담을 월드프리미어로 결정했던 건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영화를 지지해왔던 관객층 때문일 텐데 막상 영화제를 가보니 관객들이 너무나 나이가 많더라.(웃음)  그런데 이분들이 영화 중간에 음악이 나오면 비트에 맞춰서 계속 헤드뱅을 하고 이런 풍경들이 나에게는 매우 신선했었다.
 
영화제 초반 관객상 전체 투표에서 예상외로 전체 상영작 중 3위를 달리며 선전했다. (최종 순위는 5위) 아마 영화 자체의 힘이라기보다는 주인공들이 매력적이어서 더 높은 평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아직 신인감독이고 아시아 영화라는 한계가 있음에도 이러한 평가가 나왔던 것은 아마 로테르담 관객들이 가진 영화 취향이 작용한 것 같다.
 
펑크라는 것은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그냥 멋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걸 왜 멋있는지 머리로 이해하거나 설득시키려고 하면 어렵다. 로테르담 관객들에게는 영화의 이러한 태도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던 것 같다. 사실 펑크 음악을 접하며 자라왔던 사람들은 펑크가 왜 정치적인지 시끄러운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냥 펑크니까. 그래서 멋있으니까. 로테르담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써준 코멘트가 정확하다. "이 영화는 그냥 펑크라고".
이 영화는 그냥 펑크라고!!
한선희
이 영화는 무엇보다 밤섬해적단의 노래 가사를 화면에 옮긴 현란한 텍스트 그래픽이 눈에 띈다.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이 매우 중요한데, 해외 버전은 그걸 영어로 다 만들었나?


정윤석
밤섬해적단의 음악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부조리한 사회적인 문제들을 가사로 녹여내는데 이러한 메시지들이 결국에는 관객들에게 노이즈로 전달되며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음악가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삶의 이야기와 문제점들을 노래하고 있는데, 전달되는 방식이 시끄럽다고 관객들이 등 돌리는 모습 말이다. 이러한 상황 자체가 동시대 한국 사회를 은유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 순간 ‘이들의 음악을 영화로 잘 번역해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상상해봐라. 밤섬해적단의 노래를 통해서 극장에서 갑자기 ‘김정일 만세’가 스크린에 무차별적으로 내리꽂히는 거다. 무방비로 보고 있던 사람들이 기겁할 걸 생각하니 통쾌했다(웃음). 평소 활자가 어떤 크기의 임계점을 넘어버리면 관객들에게 이미지로 보여진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시각적 전복을 통해 밤섬해적단의 노랫말이 가진 카타르시스를 극대화 시키고 싶었다.
이러한 시각적 전복을 통해 밤섬해적단의 노랫말이 가진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고 싶었다.
 
직접 CG를 담당하며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질문들은 밤섬해적단의 세계관을 영화로 확장시킬 이미지 전략에 관한 것이었다. 밤섬해적단은 음악은 그 내용만큼이나 공연의 형식을 같이 바라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단순히 밤섬해적단의 음악을 '듣는' 음악이라 정의 내린다면 결국 노이즈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반대로 '노랫말'을 강조한다면 그들의 음악은 프로파간다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공연의 재미만 강조하게 되면 음악이 아닌 '해프닝'으로 오독될 여지가 있다. 영화는 이 모든 것들을 다 담아낼 수 있는 통합적인 매체이기도 하지만 연출자로서 밤섬해적단의 음악을 어떠한 미장센으로 설계하고 구축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또 다른 차원의 질문이었다.

결국 본 영화가 밤섬해적단이라는 밴드의 정체성을 다시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미 구축해놓은 세계관을 영화에서 잘 훔쳐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밤섬 해적단이 노래 가사를 전달하기 위해 쓰는 PPT 공연의 경우 파워포인트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템플릿에서 삽입되는 내용들을 뒤섞어버린다. 기존의 레이어를 해체시키고 구조만 재조합하는 것이다. 단순하고 우스꽝스럽지만 이런 식의 접근법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지나갔던 풍경들이 얼마나 시각적으로 왜소했는가를 역설적으로 증명해준다. 본 영화의 그래픽을 설계할 때 밤섬해적단의 방식대로 Final cut X에 있는 기본 템플릿만을 이용해서 모든 CG 작업을 진행했다. 타이포그래피 역시 마찬가지로 편집 툴에서 기본으로 제공되는 폰트들을 가지고 재조합하며 디자인했다. 하지만 ‘김정일 만세’ 같은 곡들은 실제 북한에서 사용하는 천리마체 폰트를 다운로드해 그대로 사용했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감독 정윤석)

한선희
이번 작업을 하면서 전작을 의식을 안 할 수가 없다고 했는데, 작품의 기획은 <논픽션 다이어리>보다 먼저 된 것인가?

 
정윤석
<논픽션 다이어리>의 경우 2007년부터 기획된 영화이다. 준비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소재에 대한 무게감에 짓눌려 있었던 것 같다.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영화를 찍어보고 싶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밤섬해적단을 선택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개인적으로 인물을 팔로우업하는 영화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밤섬해적단의 공연은 2010년에 처음 봤고 2011년 2월에 주인공들 만나서 영화 찍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돈이 급하다고 제작지원 서류에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 1년 정도는 혼자 버티고 제대로 준비해서 나가자는 생각이었다. 처음 1년은 정말 밤섬해적단과 일주일 내내 붙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사귀던 여친이 밤섬 얘기 좀 그만하라고 화도 냈으니까.(웃음) 자유로운 영혼들이 주인공인 다큐라 그들을 통제할 수 없었고, 연출자로서도 주인공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없었다.
 
<논픽션 다이어리>과 달리 이 영화는 주인공들이 살아있고 눈앞에서 매일매일 사건들이 펼쳐지니까 정신이 없더라. 그래서 처음 6개월은 그냥 찍은 소스를 다 버린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카메라 들고 쫓아다니기만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밤섬해적단의 프로듀서인 박정근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고 결국 1심에서 유죄가 나와버렸다. 주인공들의 불행은 언제나 감독에겐 기쁨이지 않나?(웃음) 기쁜 마음으로 대법원 무죄 판결을 기다리며 <논픽션 다이어리>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한선희 
박정근의 구속 사건을 계기로 기획된 작품이 아닐까 했었는데, 그보다 훨씬 먼저 기획된 셈이다. 그의 구속은 밤섬해적단의 활동에서 매우 상징적인 모멘텀인데, 영화 후반에 이 사건이 나온다. 반면 영화의 첫 시퀀스는 고려대학교 현대차 경영관 건립 당시 스쿼팅 하는 걸로 시작한다. 그러면 그 공연을 거의 처음에 찍었던 것인가?

 
정윤석
사실 나는 영화에서 보이는 사건의 시간 순서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논픽션과 픽션의 차이점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예를 들어 최순실 사건 같은 경우, 1년 전에 투자자들에게 이런 시나리오를 건넸다면 바로 거절당했을 것 같다. 이게 말이 되느냐는 핀잔을 들었겠지.
 
결국 인간은 현실을 이야기의 세계로 치환시킬 때 그것을 안전하게 받아들인다. 즉 픽션에서 리얼리티는 논픽션적인 상황이 확보되어야 하는 거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결국 픽션이 이야기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논픽션적인 상상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걸 달리 얘기해보자. 이번 영화를 붙잡고 한 2년 가까이 편집을 했다. 편집이 재밌었던 건 과거가 자꾸 나를 뒤쫓아 오는 듯한 그 느낌이 즐거웠다. 나는 지금 현재에 살고 있는데 내 의식은 과거를 뒤지고 있다. 주인공들의 현재 모습들과 맞물려 컷들이 삭제되고 변형되는 과정들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사무실의 시계는 계속 앞으로 가는데, 내 시간은 절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상한 감정들이었다.
 
결국 연출자가 의식적으로 멀리 도망치지 않으면 계속 매몰되는 것 같은 그런 상황들. 나는 이러한 구멍들을 안전하게 이야기로 안착시키는 것이 픽션적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픽션과 논픽션은 상대의 상상력에 기대어 스스로를 증명한다. 결국 논픽션과 픽션은 태생이 분리된 경계가 아니라 하나로 이루어진 입체 조형 같은 것이다.
결국 논픽션과 픽션은 태생이 분리된 경계가 아니라 하나로 이루어진 입체 조형 같은 것이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고민했었는데 새벽에 산책을 하다가 문장 하나가 갑자기 머리를 스쳐 지나가더라. "쓰레기를 줍던 아이들이 무언가를 부수고 있다." 이 말이 떠오르자 편집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한선희
결국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를 편집하는 데 있어서 시간 순서를 꼭 따를 이유가 없었다는 것인가.

 
정윤석
<액트 오브 킬링>을 만든 조슈아 오펜하이머를 뉴욕 영화제에서 만났었는데 그 당시 초청받았던 <침묵의 시선>을 보면서 흥미로운 질문이 생겼다. 난 <액트 오브 킬링>의 마지막 결말은 영화 제작 초반에 등장한 사건이고 감독이 이야기의 완성도를 위해서 편집 단계에서 마지막에 붙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 의견이 틀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이러한 상상력이 영화의 주제와 넓게는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에겐 현실의 시간보다 이야기의 세계가 훨씬 더 크고 중요하다.
 
한선희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과 <논픽션 다이어리>은 스타일이나 장르 면에서 많이 다른데, 감독 본인은 어떤 차별점을 고려했나?

 
정윤석
심플하게 대답하자면 <논픽션 다이어리>는 개봉을 하기 위해 해외 영화제 성과가 중요했고 또 그것을 원했지만 이번 영화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거? <논픽션 다이어리>의 경우 해외 영화제의 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편집을 한 것은 맞다.
 
한선희
그 기준이 뭔가?

 
정윤석
글쎄. 아무래도 현대미술을 전공하고 같이 활동하다 보니 국제적인 담론과 이슈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점은 있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굉장히 로컬 한 소재의 영화이지만 다루는 주제들은 인간성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이었기 때문에 외국 관객들이 이해하기에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냥 서양 인텔리들이 좋아할 만한 숭고한 주제들이 영화 속에 널려있기도 하고.(웃음) 그들이 보기에 아시아에서 이런 류의 작업을 하는 게 신기했겠지. 1세계에서 픽업하는 아티스트들을 보면 항상 이 정도의 쿼터를 남겨놓는 것 같다. 그 사실을 아니까 영화제 성과에 큰 의미 부여 안 하는 거고.(웃음)
 
한선희
작가의 영리한 전략이라고 봐야 하나?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감독 정윤석)

정윤석
이게 영리하다면 영리한 점인지 모르겠는데 (웃음) 주제의 특성상 <논픽션 다이어리>는 외국을 거쳐서 소개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생각에 이 영화를 꼭 봐야 하는 관객은 지식인층이었는데 그들이 관심 가질 만한 마케팅 요소도 중요하니까. 그리고 개인적으로 작가가 작업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인정욕구라고 생각하는데 어차피 첫 장편이었고 3대 영화제 가고 싶다면 한방에 끝낼 수 있는 걸로 해야지 했던 마음이 컸다. 지금은 이런 생각 못한다. (웃음)
 
결국 두 번째 영화를 만들면서 전작의 비평적 성공이 큰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다. 그냥 내가 만들고 싶은 데로 만들 수 있는 보험을 든 느낌이랄까? 사람들이 영화 보고 "이게 뭐야 씨발!" 그러다가 <논픽션 다이어리>는 좋았으니까 하고 넘어가는 상황을 상상하며? (웃음) 전작과 달리 나를 많이 보여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평가에서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부인할 수 없다.
 
한선희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의 경우 어떤 면에서 본인이 드러난다고 생각하나? 펑크적인 것? 아니면 예컨대 <논픽션 다이어리>가 매우 미니멀한 영화였다면 여기서는 맥시멀리즘을 실험한 것?

 
정윤석
그냥 영화 보면 안다.
 
한선희
밤섬해적단 멤버들과 나이가 비슷한가?

 
정윤석
아니다. 박정근은 30이고. 용만이가 제일 나이가 많다. 나이 차이는 있지만 생각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그런 부분에서 밤섬해적단이 내게 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면이 있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 친구들을 처음 만나고 제일 많이 들었던 단어가 ‘가난뱅이’와 ‘멍청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밤섬이 참여했던 공연 중에 ‘가난뱅이 다 모여’ 같은 이름의 공연도 있다. 이렇게 스펙이 강요되는 사회에서 ‘가난뱅이’나 ‘멍청이’라는 말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오히려 사회적 금기를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가지고 논다는 게 너무 놀라웠었다. 낙관성이라고 해야 되나. 자존감이 높은 거다. 자존감이 높기 때문에 자기의 비루함마저 유희할 수 있는 거다. 이 부분이 너무 좋았다.

한선희
왜 그런 질문을 하냐면, 밤섬해적단에서 유희의 정신이 중요하잖나. 그렇게 할 수 있는 태도와 그 세대의 정체성에 대해 영화가 계속 질문을 하고 있고, 감독이 이를 밝히려고 되게 노력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사실 감독이 그 장면을 굳이 편집에 넣은 것은 감독 자신이 그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난뱅이’와 ‘멍청이’가 금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자존감을 갖게 되었는가.

 
정윤석
돈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자존감 낮은 사람들 많다. 창작자들도 마찬가지다. 영화 주인공인 성건이 말처럼 가난해지는 데는 여러 가지 사회적 요건이 있는 것이고, 꼭 음악을 하기 때문에 가난해지는 건 아니다. 나는 이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주인공들의 자존감에는 스스로 획득한 성공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선희
성공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다?

 
정윤석
승리의 기억. 예를 들어서 홍대 두리반, 작지만 승리의 경험들이 있는 거다. 최근 박근혜를 몰아냈던 시발점이 된 이대 투쟁도 역시 학생들의 자발성이 주목받지 않았나? 2000년대 이후 엘리트 운동권의 활동으로 특정 세대가 승리한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기존의 문법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회의감이 강하다. 오히려 사회 체제와 타협이 빠르고 더 빨리 변하는 모습들을 많이 봐왔다.
 
결과적으로 지난 5년간 주인공들과 교감하면서 나 역시 어느 순간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배운 게 아닐까? 그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간에 그 안에서 자기를 보호하는 법을 배웠을 거다. 그런 면에서 이번 영화야말로 내가 영화감독으로서 가진 자의식을 좀 더 자신있게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예술가로서 권용만처럼 계속 해석을 거부하고 탈주하고 싶은 욕망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성건이처럼 정직하게 하나의 방향만을 보면서 작업을 진행하는 삶의 모습들이 있다. 권용만과 장성건은 어떻게 보면 나 자신의 분리된 두 개의 자아이다. 둘 다 소중한 것이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작품이야말로 내가 영화감독으로서 가진 자의식을 좀 더 자신있게 표현한 작품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감독 정윤석)

한선희
그런 면에서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정윤석 감독이 더 잘 보이는 영화라는 뜻인가?

 
정윤석
중요한 것은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용기인데 한국에서는 다른 삶에 대해 관용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늘 같은 선택을 강요받고, 그 선택 안에서 자기를 맞춰야 되는 게 한국 사회의 올바름이니까. 내가 10년 동안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 판에서 아직도 미술가냐 영화감독이냐 질문받는 것처럼. (웃음)
  
한선희
88만 원 세대라 불리는, 그 세대의 공통의 에토스 같은 걸 이 영화가 건드리는 측면이 있고, 거기서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면이 있다는 건가. 세대론을 얘기하다 보니 정윤석 감독 금호미술관에서의 첫 개인전의 제목이 <88>이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정윤석
꼭 88만 원 세대라고 특별히 정의 내려 얘기하는 건 전혀 아니고, 그냥 청년들. 지금의 젊은 친구들이라고 하자. 그 당시에 썼던 개인전 서문을 다시 읽어봐도 크게 변한 것은 없다. 하지만 나에겐 유효한 질문이다. 

한선희
그렇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답을 주는 게 아니라 계속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정윤석
드라마적으로는 영화가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영화에서 반복되는 질문은 결국 삶에 관한 선택들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마주하는 상황들 속에서 좀 더 나은 선택을 추구하려 애쓴다. 영화의 결말을 보고 나면 관객들에게 밤섬해적단의 음악들이 더 이상 시끄럽고 불편한 소음이 아닌 좀 더 다층적이고 중의적인 의미로 들렸으면 좋겠다.
한선희
개인적으로 <논픽션 다이어리>와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를 같이 생각을 해보면, 이 두 작품의 배경을 생각해보면, 1994년이라는 시간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우연의 일치인 것 같은데 정윤석 감독이 두 번에 걸쳐서 이 시기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상하게 <논픽션 다이어리>에도 94년의 지존파 살인사건과 성수대교 붕괴 등의 사건이 나오는데,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에서도 ‘서울 불바다’ 발언이 94년에 있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논픽션 다이어리>식의 정의를 따르면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에 진입했던 그 초창기 시기가 정 감독에게는 작가로서 주제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모멘텀이 되는 것인가, 그런 의문을 갖게 된다.

 
정윤석
그렇게 읽어주시면 너무 감사한 것 같다. 사실 <논픽션 다이어리>는 시대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고,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은 세대, 그 90년대 체제 이후에 파생된 어떤 개인들을 다루고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의 모든 구조적 문제는 90년대 체제의 어떤 결과물이다. 결국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그 안에서 성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모든 감독은 전작을 의식하면서 작업을 진행하기 마련인데 <논픽션 다이어리> 개봉 당시 기억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논픽션 다이어리>의 경우 세월호와 묶여서 관련 리뷰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정말 너무 겁이 나서 배급사 대표님께 개봉 안 하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나에게 세월호에 대해 질문을 할 텐데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다고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종영을 앞둔 영화의 마지막 GV 날이었는데. 그날 GV의 마지막 질문을 10대 친구가 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어른들을 믿었는데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감독님의 생각을 듣고 싶다”라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서 "나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번 영화를 편집하면서 그 마지막 질문의 감정을 잃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다. 나도 이제 어른이 되어버렸다.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나이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사실 많이 후회가 된다. 질문했던 친구에게 그냥 "모르겠다"가 아니라 "내가 부족해서 모르겠다"라고 답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의 미안함을 이번 영화에 담아내고 싶었다.
한선희
그런 점에서 정윤석이라는 작가가 한국 다큐멘터리 씬에서 특별한 점을 차지하고 있다고 얘기를 한다면, 90년대 자체를 본격적으로 화두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 아직은 드물다. 비판적으로, 비평적으로 90년대를 다룬 작품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함께 활동하고 있는 동료 감독들이나 다큐멘터리 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윤석
현재 다큐멘터리 씬이 지금 굉장히 다양해졌잖나. 옛날에 비해 규모도 많이 커졌고. 극장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방송 출신의 감독들도 나왔고, 그리고 미술 쪽에서 미학적으로 접근해서 들어오는 감독들도 생겼고, 한예종으로 대표되는 정규 과정을 통해 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있다. 거기다 뉴스타파처럼 저널리스트 출신의 감독도 생긴 거다.
 
예전에 김일란 감독과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다큐씬이 세분화되면서 전통적인 액티비즘 다큐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이 많으시더라. 사실 영화 미학적인 것도 어느 정도 분리가 되었고, 저널리즘적인 역할도 <다이빙벨> <자백> 같은 작품들이 시의성에서 좀 더 앞서가고 있고. 이러한 변화에 대해 고민이 좀 있으신 것 같다. 옛날에는 액티비스트들이 그 역할을 담당했고 사회적으로 환기 효과도 있었는데, 요즘은 채널도 다변화됐고, <세월X>처럼 누구나 손쉽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전통적인 액티비즘 영화/감독들의 사회적 역할도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나는 감독님만 그런 걱정하시는 거라고 구박했다.(웃음) 민중 미술처럼 특정 예술은 어떤 시기를 지나면 그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것은 예술가들의 신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여전히 전통적인 액티비즘 다큐멘터리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그들의 존재가 사회적 방파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박배일 감독처럼.(웃음) 참고로 나는 박배일 감독이 너무 좋다. 내 영화 후원도 해주고. 정작 나는 그의 영화를 하나도 안 봤는데.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것은 예술가들의 신념이라고 생각한다.
한선희
영화를 보지도 않았는데 박배일 감독을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뭔가?

 
정윤석
박배일은 그냥 영화 안 보고 페이스북만 봐도 된다. 영화랑 페이스북이 똑같을 거다.
 
한선희
그럼 본인은 본인의 작업을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 사회의 90년대에 대해 두 편의 작품을 통해 비평적인 목소리를 냈고, 사실 그걸 통해서 현재 한국 사회의 어떤 징후를 읽어내는 작업을 한 건데,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전통적인 액티비즘은 아니다. 소외된 집단이나 어떤 공동체와 연대한다거나 어떤 제도를 개선하기를 주장하거나 그런 건 아니어서, 본인의 작업의 자리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나?

 
정윤석
이게 또 정체성 논쟁으로 가면 재미 없어지는데. (웃음) 나는 항상 주제에 가장 적합한 매체를 선택해서 작업하는 편이어서 지금은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재밌는 건 나는 내 영화를 직접 설명할 자리에서는 가급적 '다큐멘터리'라는 표현은 피하려고 노력한다. 대신 영화 혹은 논픽션 영화라는 단어를 쓴다. 로테르담에서도 주인공들을 '액터'라고 소개했더니 신기해하더라. 한국에서 통용되는 다큐멘터리의 정의는 내 영화의 가능성과 시도들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정확한 울타리는 아닌 것 같다. 아직 필모그래피가 과도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선희
어쨌든 본인의 작업에서는 예술적 성취가 가장 중요한 것인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어떤 것인가?
정윤석
지난 영화들을 머릿속에서 떠올려 봤을 때 공통점이 있더라. 결국 내 영화는 인물이 중요하다, 고병천 형사와 권용만처럼 한국 사회에서 이분법적인 이데올로기에 포착되지 않는, 경계에서 자기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들을 뒤쫓고 있더라. 나는 항상 이슈나 담론이 작품 선정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된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재밌는 발견이었다. 
 
한선희
그렇게 보인다. 지금 그렇게 말해서 좀 놀랍다. 왜냐면 정윤석의 지금까지의 영화에서는 사건이 중요하다. 본인은 인물을 보라고 그렇게 강변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논픽션 다이어리>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고병천보다는 그 사건이고,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에서도 아까 캐릭터 얘기를 많이 했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캐릭터가 두드러지게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캐릭터에 신경을 썼다는 것이지 잘 만들었다는 말은 아니다(웃음). 왜 그럴까. 내가 지지하고 지켜봤던 주인공들을 생각해보면, 결국 나에 대한 고민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실 이야기의 세계에서 보이는 주인공들의 삶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결정적 순간들을 담보하는데 실제 삶이라는 것은 사실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내 삶을 돌이켜봐도 각각의 개연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자기 삶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이 점점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살아가야만 할까?
 
결국 고병천이 정의로운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마주했던 순간에 다가왔던 윤리적인 질문들이 중요하다는 거고, 그게 진실이라는 거다. 권용만이 음악가로서가 아니라 한 개인이기에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이 더 중요하다는 거다. 우리 사회가 이런 질문들을 많이 망각하고 있어서 많이 아쉽다. 때문에 이번 영화에서는 질문보다 ‘선택’들을 더 강조하고 싶었다. 전작에서 질문이라는 행위에 매몰되어 책임의 영역에 대해 간과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라는 의심과 함께. 모든 질문에는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라오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질문들이 잘 도착할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를 만들어내는 게 가장 중요했다. 관객들이 이런 시도들을 주의 깊게 읽어줬으면 좋겠다.
  
한선희
한국 사회의 좌우 프레임에 걸리지 않는 인물에 관심이 간다고 했는데, 한국 사회라는 프레임 자체, 국가라는 어떤 공적인 개체가 정윤석 감독에게는 왜 중요한지 궁금하다.

 
정윤석
한국 사회의 좌우 프레임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 사회의 어떤 이분법적인 태도. 예술가의 가장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목표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거 아닐까? 위대한 예술가들이 인간의 보편성에 집중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대한문에서 쌍차 집회했을 때 중구청에서 강제 철거 뒤 집회를 못하게 하려고 그 자리에 꽃을 심어놓았던 일이 있다. 뉴스를 접하고 나는 분노보다 슬픔의 감정이 더 컸는데 한국 사회에서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자꾸 추악하고 부조리한 것을 감추기 위한 위장으로 쓰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결국 한국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나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준다. 내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직 우리에게 도착하지 않은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생각들이 너무나 이상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직 우리에게 도착하지 않은 아름다움에 대한 것!
한선희
어쨌든 본인은 궁극적으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어떤 낭만적인 예술 개념, ‘예술을 위한 예술’ 이런 건 아니라는 건가?

 
정윤석
예술은 결국 사회의 산물이고, 그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나 역시 예술가이지만 동시에 시민이기도 하다. 모더니스트들이 꿈꾸는 국가라는 것은, 결국 정의로운 국가 아닌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완성되는 국가, 단언컨대 한국에서는 해방 이후 이런 국가의 모델을 가져본 적이 없다. 지난날 김동원 감독이나 김일란 감독 같은 훌륭한 모더니스트들이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이러한 상상력의 빈자리를 메꾸어왔지만 이마저도 입지가 더 좁아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주어진 현실을 외면하기가 어렵다. 저 사람들이 무너지면 내가 꿈꾸는 영역들도 사라지기 때문에 같이 싸워야 된다는 것, 어떤 역할을 같이 해야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건 언제나 반복되어왔던 역사의 흐름이다.
  
한선희
이 자리에서 모더니즘 논쟁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미술의 역사에서 모더니즘에도 여러 갈래가 있다. 미국식 모더니즘의 경우 어떤 역사성이나 사회성보다는 매체의 형식 자체, 매체 자체의 조건을 가지고 실험을 하는 두드러진 경향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는 어떤 입장인지 궁금하다. 왜냐면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에서 그런 것들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매우 실험적인 형식들, 왜곡된 이미지들, 또는 어떤 실험영화 전통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옵티컬한, 필름 매체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듯한 다양한 기법들을 자유자재로 쓰고 있다.

 
정윤석
내 영화를 보고 '정윤석 감독한테 가장 중요한 레퍼런스는 대중문화인 것 같다'는 말을 해준 사람이 있었는데, 맞는 얘기인 것 같다. 여기서 대중문화라는 말은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미국 대중문화의 장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장르적 컨벤션을 기존의 다큐멘터리와 결합하는 거다.
 
한선희
미국 대중문화의 장르성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정윤석
애런 소킨이 만든 미드 같은 거다. 아니면 <어벤저스> 같은 액션 히어로물. 타란티노가 즐겨 쓰는 텍스트의 장난 같은 거나, 난 이런 걸 보면서 자라왔다. 대중문화, 팝 컬처 서브컬처로 자연스레 세분화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돈을 내고 예술을 배운 엘리트 예술가니까.(웃음) 내가 표현하는 예술이 어떤 특정 장르나 표현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이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으면 일요일 오전에 TV에서 방영하던 <베트맨>을 봤다. 한때는 뮤직비디오 감독이 되고 싶어 크리스 커닝햄의 작품들을 수백 번 돌려봤던 것도 기억난다. 그리고 영화관에 갈 기회가 생기면 예술영화보다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를 선택했다. 결국 나의 취향은 다분히 계급적인데 이 점에 있어서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한선희
그렇다면 현대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는 팝아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건가? 가령 타란티노식의 대중문화는 미술은 아니지 않나.

 정윤석
 팝아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라는 작업이 있다. 쉽게 설명하면 그냥 앤디 워홀이 농심라면 박스 디자인을 베껴 다시 박스를 만든 뒤 전시장에 쌓아 놓았다고 보면 된다. 이 작업을 보고 아서 단토라는 비평가가 이 작품이 왜 예술이 되는지 설명하면서 ‘이제 예술에서 내러티브는 끝났다'는 멋진 말까지 남기셨는데. 정작 앤디 워홀은 전시장에서 어리둥절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 작업 너무 좋은데 왜 좋은지 설명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둘 다 헛소리들인데 그래도 앤디 워홀의 헛소리가 더 멋있어서 좋다.
한선희
그게 아까 언급한 미국식 대중문화와도 관계가 있는 건가?

 
정윤석
모르겠다. 그냥 내 헛소린거 같다.
 
한선희
미술계에서 나오는 해설을 보면, 정윤석에 대해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질문을 제기하고, 폭력과 상식에 반하는 사회에 대해서 자기 주제의식을 가지고 작업하는 작가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개인에 따라 어떤 계기에 의해 사회의 부조리 등에 대해 예민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있고, 정치와는 거리를 두는 사람들도 있다. 작가로서 그런 화두를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정윤석
말씀하신 프레임이 유효했던 것은 내 20대 후반 작업들까지다. 미술계 사람들이 <논픽션 다이어리>나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와 같은 영화를 미술의 연장선에서 보지 않는 않는다면 충분히 저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유행하는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왜 청년세대들에게 회자될까 고민해본 적이 있다. 나에게 있어서 최초의 헬조선은 이명박 정부 그러니까 2008년 촛불시위가 정점이었다. ‘이게 맞다’고 배운 게 있는데 사회가 그렇게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자각한 시기였다. 지켜왔던 상식들이 다 무너져내리는 게 너무나 또렷이 보였다.
 
사람들은 다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비정규직은 거리로 내몰렸다. 작가나 감독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피칭 나가야지, 알바 뛰어야지, 작업을 하려면 지원이 필요한데 이건 다 경쟁이다. 지난 10년간 작업하면서 사회가 우리를 보호하고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운 좋게도 계속 전시 기회를 얻으면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는데, 내 주변에선 작업을 그만두는 친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점점 고립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세대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나만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에 위축감마저 들더라. 그런 패배의식을 없애기 위해 2008년 촛불시위 때 열심히 카메라 들고 사람들을 찾아다녔던 것 같다. 결국 거리의 정치에서 배운 게 많다.
  
한선희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것을 발견하고 싶나?

 
정윤석
좀 어렵다. 질문을 들으니 1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는데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고, 혼자서 모든 걸 끌어안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그래도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작가로서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들을 다 지켰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믿었던 영화들을 완성시켰고 예술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10년간 하나의 원을 그리고 다시 점으로 돌아왔는데 앞으로의 10년은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더 큰 원을 그려보고 싶다.
앞으로의 10년은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더 큰 원을 그려보고 싶다.
한선희
다음 작품도 다큐멘터리를 할 생각인가?

 
정윤석
학부시절 남미의 탄광 광부들을 찍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내용은 새롭지 않았고 형식은 지루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 "저 감독은 40년이 지나서 한국이란 나라에서 자기 영화를 볼 줄 알았을까?" 정말 멍청한 질문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그 답을 찾아낸 것 같다. 감독이 사랑하는 주인공들이 그곳에 있었으니 카메라를 들고 갔겠지. (웃음) 나는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나 진실에 대한 단순한 열망들은 여전히 불편한 사람이지만 지금 당장은 논픽션에 집중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갖고 있는 질문들이 잘 해결되면 언젠가 픽션을 찍을 것이다. 급하게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
 
한선희
이런 모더니스트 같으니라고!

 
정윤석
난 이번 영화에 정말 만족한다.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멋지다. 최고!
 
한선희
그렇게 오랜 시간 작업해서 마침내 작품을 끝내는 그 지구력이 인상적이다.

 
정윤석
제작비 투자해주면 빨리 끝내 줄 수 있다(웃음)



 

한선희 / 플레인 픽처스 대표 / 프로듀서

장편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2011) <만신>(2013)의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플레인픽처스를 설립해 <망원동 인공위성>(2013)을 제작했다. 방송 다큐멘터리로는 디스커버리채널 아시아퍼시픽 네트워크에 방영된 (2012)와 BCPF 그린다큐멘터리 제작지원작 <광복동 꽃할배>(2012)를 기획 제작했다. 연출과 제작을 겸한 장편 <올드 데이즈>(2016)가 전주국제영화제와 파리한국영화제에 초청되었다. 2017년 개교한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과정에서 ‘다큐멘터리 프로듀싱’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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